남구 명예기자 배재록

40년 넘도록 울산시민으로 살면서 알려지지 않아 가보지 못한 명소가 많다. 특히 10여 년 동안 남산아래에서 살면서 남산의 숨은 명소를 가보지 못했다. 최근에 태화강을 낀 솔마루길을 걸으며 탁 트인 남산의 진면모를 발견했다.

여태껏 남산을 비록산 명소를 찾지 가보지 못한 이유가 뭘까? 우선 산이라서 접근이 어렵고 복고에 대한 무관심이 낳은 결과다. 빠르게 변하는 현대 문명에 편성되어 하는 일에 집중하느라 시간이 부족했다. 보다 더 큰 이유는 옛 것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탓이다. 복고에서 추억을 떠올리지만 카타르시스를 느낄 만한 이벤트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젊은 세대는 경험하지 못한 새로움에 관심이 있다. 그러니까 옛 것에 토대를 배워 미래를 앞서 나가야 되는데 그런 의지가 부족한 것이다. 또 동해 바다와 영남알프스를 끼고 있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울산에는 볼거리가 많아서 지나치는 경우가 많았다.

조금만 관심과 눈길을 주면 쉽게 발견 할 수 있는 울산의 승경. 아름다운 풍경은 누구나 다 보고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놀이터가 아닌가. 아름다움과 어울리며 즐거워하는 가운데 스트레스를 풀고 마음에 쌓인 고민도 내려놓는 최고의 명약이기 때문이다. 우리 남구의 경우 거대한 농지를 택지로 개발해 단 시일에 도시가 형성되어 역사적인 유물과 승경지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영남알프스를 낀 울주군이나 검푸른 동해와 무룡산을 낀 북구에 비하면 여러모로 빈약한 실정이다. 남구 곳곳이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고 문화공간부족으로 구민들의 정서함양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우렁우렁 울산 시내 한복판을 가르며 흐르는 태화강을 낀 남구 곳곳에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숨어 있어 발굴과 조성이 아쉬운 옛 문화가 많다. 이를 현대의 정서와 연결하여 관광자원화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남산 바로 아래에 잇는 울산 최대의 전통시장 신정시장과 평화시장과의 연계가 필요하다.

최근 유행인 출렁다리의 예에서 보더라도 주변상권과 연계되어 지속가능하고, 지방자치단체장의 정치적 신념이 개입 되지 말아야 한다. 우려가 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인 태화강국가정원과 남산을 연계해 관광자원화 하되 위에서 언급한 사항이 배제 되어야 한다.

현재 남구의 주요 명소를 꼽는다면 울산대공원, 고래박물관과 고래문화마을, 여천 걷기길, 율리 두현저수지 둘레길, 선암호수공원, 솔마루길, 장생포 둘레길, 옥동 상박골못 수변공원, 태화강 걷기길, 동굴피아, 태화강국가정원, 처용암, 개운포성지, 그 외 문화시설 등 적지 않다.

이러한 알려져 있는 위락시설에 비해 남구의 주산이라 할 수 있는 남산에도 걷기 코스와 태화강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역사의 현장이 숨 쉬고 있다. 옛 국가의 수도에는 대부분 남산이란 이름이 많은 편이다. 서울 만산과 경주의 남산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울산에 있는 남산도 태화강의 북쪽에 있었던 부족국가였던 부내면의 남쪽에 있다고 해서 조선 정조 때부터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남산의 원래 이름은 거마산이라 한다. 그 옛날 신라의 김유신 장군이 두동에 있는 화랑훈련장에서 훈련을 마치고 조부와 부친의 묘가 있는 남산의 은을봉에 왔다가 큰 말을 타고 갔다 해서 지은 거라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실제로 거마산 아래는 거마동이라는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옥동 상아 고개에서 신정동 평화시장 일대를 거마동이라 불렀다고 한다.

남산은 높이가 낮은 산이지만 12개 봉우리가 있다. 주봉인 은을봉은 그 옛날 태화강 강변에 있는 정자인 태화루에서 밤새도록 풍류를 즐기던 사람들이 남산을 보니 달이 봉우리에 숨었다 하여 은을봉이라 불렀다 한다. 은을봉 비석 뒤에는 이색의 아버지 이곡이 지은 은을봉 시가 새겨져 있다.

‘흰 구름은 뭉게뭉게 은하수를 가리고/차가운 달 속은 계수나무 꽃으로 가득하네….’ 사육신의 영혼을 슬퍼하는 시라 여겨진다.

은월봉 옆에 우뚝 솟은 남산루(은월루)가 남구를 굽어보고 있다. 2009년에 건립된 전통 사각 정자로 정면 3칸, 측면 2칸 정자다. 2층으로 지은 정자에서 바라 본 남구는 태화강 물줄기와 함께 승경이다.

울산의 도심을 볼 수 있는 정자는 함월루와 은월루가 있다. 함(含), 은(隱) 자는 달이 뜨고 지는 시간의 흐름을 말한다. 달이 함월산에서 떠올라 은월봉으로 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은월봉을 지나 아름다운 정자인 비내정으로 가기 위해서 범처럼 생긴 ‘범굴 길’로 방향을 잡았다. 조금만 내려가면 아름다운 정자 비내정이 태화강을 굽어보며 세워져 있다. 태화강에서 남산을 바라보면 산 중턱에 보이던 건축이다. 산 아래서 볼 때마다 무슨 건물인지 궁금해 했는데 막상 현장에 와서 본 비내정은 승경이었다. 이 정자는 비녀암을 기리기 위해 지은 정자라고 한다. 옛날 태화강변에 비녀암이 있었다 한다. 1925년 을축년 홍수 때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그 비녀암을 기리기 위해서 최근에 건축한 정자다.

태화강에서 배를 타던 묵객들이 비내정을 바라보며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건축미가 아름답고 푸른 단청과 학, 소나무 그림이 보기 드물게 유려하다.

정자 아래 펼쳐지는 태화강 국가정원과 구 시가지였던 태화동 일대가 한 편의 그림처럼 한눈에 들어온다. 부여의 낙화암처럼 태화강에 뛰어 내리고 싶은충동이 일어나는 곳이다. 태화강의 푸른 물에서 노니는 물오리와 불쑥 솟구쳤다 잠수해 버리는 물고기들이 노는 모습은 평화 그 자체다.

비내정에서 승경을 즐기고 아래로 내려가면 등산길이 나있는데 여기가 울산 시내인지 의아할 만큼 울창한 골짜기와 숲이 우거져 있다. 멧돼지라도 출몰할 법한 으쓱한 산길을 따라 내려오면 동굴피아 분수대 중앙으로 길이 열려있다.

이 길을 따라 비내정과 은을봉으로 오를 수가 있다. 남산에 숨어 있는 비경이 널리 알려져 많은 울산시민들이 찾을 수 있는 명소가 될 날을 기대한다. 그리고 지역 상권과 연계되어 코로나에 찌든 시민들의 마음을 치유해 주는 위락시설로 자리 잡기를 앙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