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지는 가을의 정취. 하늘은 더 높아지고 말이 부쩍 살을 찌우는 가을의 끝자락이면 울산 남구가 자랑하는 선암호수공원 언덕과 테마쉼터에서는 꽃무릇의 향연이 펼쳐진다.

언젠가부터 가을을 대표하는 꽃으로 여겨지는 꽃무릇은 이제 전국의 웬만한 명소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긴 하다. 그래도 넓은 수변을 둘러싼 언덕을 뒤덮는 선암호수공원의 꽃무릇은 여느 명소의 평탄하게 깔리는 꽃무릇 군락과는 다른 독특한 매력을 뿜어낸다.

예전에는 ‘돌마늘’이란 뜻의 ‘석산(石蒜)’으로 더 잘 알려졌던 꽃무릇은 6~10월에 빨간색 꽃이 피는 다년생 초본식물인데 9월 말경부터 군락을 이룬다. 철철이 다른 색깔, 다른 종류의 꽃으로 옷을 갈아입는 선암호수공원 수변 언덕도 10월로 접어들면서 꽃무릇 천지로 변신한다.

선암호수를 둘러싼 신선산 발치의 가파른 언덕을 비롯해서 수변경관 전체에 무려 21만여 그루의 꽃무릇이 심겨져 있다. 수십만 송이의 꽃무릇이 일제히 만개할 때면 붉은 뭉개구름이 온 땅을 뒤덮는 몽환적 광경을 연출한다.

호수 주변을 한바퀴 돌면서 만나는 언덕을 뒤덮은 꽃무릇도 좋지만 집중적인 꽃무릇 카펫을 구경하기에는 3대 종교의 미니어쳐 성소가 자리잡은 테마쉼터의 꽃무릇 군락도 뒤지지 않는다. 원래 사찰가에서 많이 심었다는 꽃무릇은 그 유래에 맞게 미니사찰 안민사로 올라가는 언덕길과 절 주변을 온톤 붉게 물들인다. 테마쉼터로 가는 길의 초입에서 솔마루길로 빠지는 그린나래길에도 꽃무릇이 푹신푹신하게 펼쳐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선암호수공원에서는 호수 주변 뿐 아니라 자동차가 들어가는 입구 길가에서부터 몇평 되지 않는 틈만 있으면 꽃무릇이 심겨져 있다. 그래서 이맘때면 마음먹고 조성한 꽃단지가 아니라 마치 동네 텃밭에 무심코 심은 듯한 작은 꽃무릇 꽃밭들도 점점이 붉은 꽃방석을 이루면서 지나가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굳이 군락지가 아니어도 호수로 가는 도중 여기저기서 꽃무릇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

구근 식물인 꽃무릇은 알뿌리 하나에서 올라온 30cm 남짓한 높이의 줄기 끝에 붉은 꽃이 피어난다. 그래서 개체 하나하나를 보면 뭔가 엉성하고 듬성듬성한 느낌이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꽃송이가 넓어지고 줄기도 밀식하면서 촘촘한 꽃의 구름을 이루는 것처럼 보이는 특징이 있다. 화려한 빛깔 때문에 예로부터 불가에서는 탱화를 그리는 물감의 재료로 많이 활용했고, 독성이 있어 목재의 좀을 막는 방충·방부제 역할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울산 남구는 3년 전부터 선암호수공원 곳곳에 매년 대규모의 꽃무릇을 계속해서 심고 있다. 꽃무릇의 선홍빛과 가을 하늘의 푸른 빛, 호수의 물빛이 빚어내는 뚜렷한 대비는 해가 갈수록 구민의 마음에 더 선명하게 새겨질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