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히 흘러 바다로 들어가는 대하(大河)도 그 처음은 작은 잔을 겨우 채울 만한 옹달샘에서 시작합니다.

동해안에 면한 작은 읍에 불과했던 울산이 세계 속에 우뚝 서는 산업수도로 발전해 온 과정에서 그 첫 움직임이 시작된 곳이 남구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60년 전인 지난 1962년 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된 울산에서 이를 기념하는 발파식이 열린 곳입니다. 장생포항 인근 고사천 어귀 납도라는 작은 바위섬입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1992년 매립으로 육지가 된 이곳을 회사 부지로 사용 중이던 동양나이론주식회사가 발파식을 기념하는 ‘한국 공업입국 출발지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사유지라서 일반 시민의 접근이 제한되는 바람에 기억 속에서 잊혀져가던 기념비가 새로 단장한 장생포 문화창고 2층에 새 보금자리를 갖게 됐습니다. 울산공업센터 기공식 기념관입니다.

장생포 문화창고는 기념비가 섰던 발파식 터를 좁은 해협 건너 빤히 마주보는 곳에 서 있습니다. 장생포항과 고래문화마을과 인접해 접근하기 좋고, 많은 관광·탐방객이 오가는 곳이어서 산업도시 울산의 시원(始原)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방문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널찍한 문화창고의 2층 공간에 들어서면 원래 위치에서 옮겨온 기념비가 정면으로 보입니다. 암석 폭발(bang)로 시작된 ‘울산의 빅뱅’터가 이곳임을 알려주는 작지만 웅장한 기념물입니다.

그 곁에는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발파식 현장에서 낭독했던 치사(致辭)를 국한문 혼용의 유려한 손글씨체로 음각한 ‘울산공업센터 기공식 치사문’ 기념비가 있습니다.

홀 한쪽 편에는 기념관이 알맞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공업지구 지정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울산을 만들어온 역사와 변화 과정, 그 속에서 땀 흘린 사람들의 애환과 희생, 보람의 갖가지 이야기가 파노라마 형식으로 펼쳐집니다. 세월의 굽이굽이를 설명하는 소품과 사진자료, 도구, 그림 등도 갖춰져 각 시기의 사정을 생생하게 알 수 있습니다. 영광의 역사 뿐 아니라 터전을 잃고 뿔뿔이 흩어졌던 사람들과,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마을의 이야기도 소개됩니다.

신록으로 새로워지는 4월의 봄날에 울산공업센터 기공식 기념관에 들러 보십시오. 단순한 공업화라는 주제를 넘어 울산의 산업과 역사, 인간의 이야기를 만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기공식 치사문의 한 구절을 소개합니다. 지금의 인식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듯 합니다만 ‘60년 전에 생각한 울산의 오늘’을 음미해 보세요.

“… 제2차 산업의 우렁찬 건설의 수레소리가 동해를 진동하고 공업생산의 검은 연기가 대기 속에 뻗어나가는 그날엔 국가 민족의 희망과 발전이 눈앞에 도래하였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