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광역시의 동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사는 삼산동(三山洞)은 근대 이후 울산이 걸어온 역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변화의 역사를 갖고 있다.

삼산동은 한적한 바닷가 시골 마을이었던 울산이 20세기 이후 발전을 거듭하며 인구 100만 명이 넘는 광역시로, 세계적인 산업도시로 탈바꿈해 온 여정과 비슷한 길을 걸었다. 물기 배어나는 습한 벌판 주변에 야트막한 둔덕이 몇 개 섰고, 바닷가에 펼쳐진 소금밭 이외에는 갈대만 무성할 뿐, 사람 살만한 곳이라고는 별로 없던 삼산동은 오늘날 울산의 교통과 유통, 문화의 중심지라는 위상을 자랑한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대규모 논밭만이 자리 잡았던 삼산동의 모습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르다. 시대가 변하더라도 자연적인 모습은 별로 바뀌지 않은 울산의 다른 지역에 비해 삼산동은 환골탈태, 그 자체다. 인구가 적고 너른 들판만이 펼쳐졌던 곳이라 구획정리가 손쉽고 도시계획이 용이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지금은 대단위 아파트가 산재하고, 원룸과 상가가 밀집해서 유동인구도 많다. 태화강역, 시외·고속 터미널, 남구청 울산KBS, 울산문화예술회관, 남구문화원이 밀집해서 자리 잡고 있다. 백화점, 대형할인점, 농수산물도매시장, 공구상가 등도 삼산동에 소재한다.

심산동은 지도로 보면 반듯한 마름모꼴이다. 동쪽으로 흘러가는 여천천이 남쪽 경계를 이루며, 서쪽 경계에는 번영로가 남북을 가로지른다. 북쪽은 태화강이 울산 중구와의 천연 경계를 이룬다. 꽃대나리로 삼산로 돋질로 강남로가 사다리를 이루며 동의 동서 방향을 횡단한다. 이 길들은 울산 개발 당시 공업탑에서 방어진 울산항 산업단지 등으로 나가는 길목이어서 인구 증가와 도시 발전에 한몫을 했다. 남북으로는 화합로가 동의 정중앙을 관통하고 있다.

삼산동이라는 이름은 이곳이 옛날부터 ‘이수삼산(二水三山)’으로 불려온 데서 유래됐다. 태화강과 지금의 여천천이라고 여겨지는 화진도(花津渡)를 일컫는 두 물(二水)이 있었고, 태화강 남쪽 벌판에 솟아 오른 둔덕이 자라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해서 오산(鰲山)이라고 했는데 여기에 봉우리가 셋(三山)이어서 이 일대를 삼산들이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삼산들 논에서는 소출이 많았지만 걸핏하면 태화강 범람으로 홍수 피해도 많이 입었다.

우리나라 두 번째 공항으로 기록되는 울산비행장이 여기에 있었다. 1928년 일제는 지금의 삼산동 아데라움 아파트 근처 벌판에 울산비행장을 만들었다. 해방 이후 흔적도 없이 사라진 울산비행장의 존재를 기념하는 표지판이 남구청 주차장 서쪽 왕생이길 한켠에 서 있다. 바닷가 가까운 곳으로는 염전이 있어 질 좋은 소금이 대규모로 생산되어 전국에서 알아주는 백염(白鹽) 산지로 손꼽혔다.

1914년에 이 지역이 몇몇 마을을 합쳐 삼산리라는 이름을 얻었고, 1962년 울산시 승격과 함께 삼산동이 되었다. 1972년 달동에 편입되었다가 1995년에 다시 분동되어 나와 현재에 이른다. 법정동인 달동의 상당 지역이 행정동인 삼산동에 포함돼 있다. 면적은 남구에서 4번째로 넓은 5.6㎢, 인구는 4만9000여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