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하수도관이 그 쓰임을 다하면 어디로 갈까. 상수도관도 아니고 하수도관이라면 당연히 폐자재 처리장으로 직행해야 하지 않을까. 재활용할 가치도 없을 것 같았던 폐하수도관이 앙증스러운 화분으로 바뀌어 동화에나 나옴직한 아기자기한 작은 정원을 이루는 곳, 꽃과 조형물, 벽화로 이뤄진 삼호포켓정원이다.

삼호포켓정원은 삼호동 와와커뮤니티하우스 근처의 주택가 골목길에 숨어있는 골목정원이다. 200~300m 남짓한 눌재로8번길과 눌재로4번길 주택 담벼락이나 발치에 장식된 화분들이 가로로 혹은 세로로 앙증맞게 놓여 ‘골목꽃동산’을 이룬다.

삼호동 정광사약수터 버스정류장에서 눌재로4번길로 들어가는 입구. ‘삼호정원’이라는 작은 나무 팻말이 꽂힌 두평 남짓 세모꼴 자투리땅이 포켓정원의 ‘관문’이다. 폐자전거로 만든 산뜻한 철골에 작고 아담한 꽃들이 매달려 있다. 좁은 땅바닥에는 이름모를 풀꽃이 제법 무성하다. 한쪽 담벼락에도 갖가지 색칠을 한 작은 나무토막이 붙어있어 벽화 조형물의 느낌을 준다.

골목길 안에는 작지만 갖가지 화분이 이어진다. 위치도 제각각이어서 담벼락 밑 발치에 위태롭게 자리 잡은 게 있는가 하면, 줄에 매달린 것도 있다. 여러 개 자전거 바퀴에 매달린 꽃도 있다. 구식 대문 테라스, 연립주택 벽의 마루턱, 주차장 입구 틈새, 옥상, 담장 등에 화분이 놓였다.

폐하수관만 있는 게 아니다. 방부목 화분에다 고려청자 빛깔의 도자기며 작은 고무‘다라이’ 등도 꽃 몇 송이씩을 품었다. 길다란 호스를 세로로 잘라 길쭉하게 펼쳐놓은 것, 물동이나 통나무, 요강을 닮은 화분도 있다.

꽃은 포켓정원 규모처럼 작은 것들이다. 무늬둥글레, 황금사철, 채송화, 단청화, 불두화, 바늘꽃, 패랭이, 프렌치라벤다, 로즈마리, 연산홍, 붉은인동초, 애기해바라기, 메리골드, 밀발도리, 베고니아, 톱풀, 바위솔 등 이름만으로 작은 느낌을 주는 화초들이다. 무려 100여종이란다. 깜찍하고 귀여운 모습에다 화분 크기도 작아서 자칫 욕심이 날 만도 할 것 같다. 그래서 골목 곳곳에 ‘눈으로만 보고 갖고가지는 마세요’라는 글귀가 붙어있다.

포켓정원이 만들어진 건 이제 3년째. 주민들이 사는 집의 벽에 꽃 장식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조형물을 붙이는 게 그냥 이뤄진 게 아니다. 당연히 처음에는 주민들이 귀찮아하고, 화분을 치워버리거나 화초를 뽑아 버리는 일이 흔했다. 누군가 꽃과 화분을 훔쳐가는 일도 적지 않았다.

이곳을 꾸미고 가꾸는 데 앞장선 이들은 남구 마을공동체 만들기 공모에 응한 마을활동가들. 2019년 주민 5명이 뜻을 모았고 이듬해 남구 도시재생 주민공모사업을 통해 눌재로4번길에 첫 골목포켓정원을 만들었다. 인근에서도 가장 환경이 골목에 나무화분과 폐하수관 화분 90여개를 놓고 나비수국. 병꽃나무. 바위솔 등을 심었다. 울산미협 작가들과 울산대 미술전공 학생들이 그림 봉사를 했다.

낯설어 하던 주민들이 흔쾌히 공간을 내준 것은 아니었다. 처음엔 자기 집 앞 화분에도 물주기나 관리를 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도 상습적인 쓰레기 투기지역이있던 골목길이 밝아지는 모습에 관심을 갖고 집앞에 화분을 설치해달라는 부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2021년 눌재로8번길에도 포켓정원이 들어섰다. 오래된 담장에 새로 페인트를 칠하고 화분으로 단장했다. 날이 갈수록 주민들은 정원의 존재를 반겼고 화분 관리에도 적극적이었다.

삼호정원 활동가는 현재 이윤옥 대표를 비롯해서 최춘희 박미자씨 등 14명이지만 이제는 골목길 주민들이 모두 포켓정원을 가꾸는 활동가라고 부를 만하다. 이들은 살고싶은 마을공동체를 만드는 데 자부심이 커 매일 골목을 돌며 꽃을 보살핀다. 한적한 7월 어느 날 포켓정원에서 미소 띤 채 꽃과 얘기하는 이를 만난다면 바로 그들일 것이다.